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통일부 공고 제2023-148호)에 대한 의견
1. 의견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산하 66개 민간단체는 2023. 10. 19. 통일부가 제2023-148호로 입법예고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밝히며,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전합니다.
2.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의 입법취지와 법 개정의 방향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다음부터 ‘남북교류협력법’이라 합니다)은 남북한 사이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1990. 8. 1. 제정, 시행되었습니다. 남북교류협력법 제정 당시 제1조는 “(남·북한 간) 상호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하면서, 그 이전에는 상호 적대(敵對)와 반목(反目)의 대상으로서 철저히 단절되어 있던 남북관계를 대화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하고 남북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이 법을 적용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제3조).
남북교류협력법은 이후 30여 년 동안 남북한 주민 사이의 교류·협력을 뒷받침하는 기본법으로 자리매김하였고, 그 사이 남북한의 관계는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의 심화와 다변화에 따라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그 바탕에는 남북한이 정치·군사적 대결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각적인 교류·협력의 관계를 만들어갈 때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이룩하고 지속가능한 평화, 나아가 통일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자리매김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합의는 남북교류협력법 제정 이후 대한민국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실제 교류·협력에 참여하거나 그 결과로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더욱 공고화되었습니다. 남북교류협력법이 2005. 5. 31. 개정을 통하여 “(남·북한 간) 상호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고 명시한 것도 그러한 사회적 합의와 뚜렷한 지향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또한 남북관계가 심화,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교류협력의 분야와 형태를 남북교류협력법으로 포괄하여 왔습니다. 그 예로 ‘교역’의 대상을 물품만으로 규정하던 것을 용역 및 전자적 형태의 무체물까지 포함하게 되었습니다(제2조 제2호). 나아가 남북한 주민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협력사업’의 대표적인 분야를 “문화·체육·학술·경제 등에 관한 제반활동”으로 한정하였지만, 현행법은 “환경, 과학기술, 정보통신, 문화, 체육, 관광, 보건의료, 방역, 교통, 농림축산, 해양수산 등에 관한 모든 활동”으로 확대하여 규정하고 있습니다(제2조 제4호). 또 ‘방문’의 경우에는 정부에서 단순히 증명서만 발급하던 것을 “한 차례만 사용할 수 있는 방문증명서”와 함께 “유효기간이 끝날 때까지 여러 차례 사용할 수 있는 방문증명서”(복수방문증명서)까지 발급하고 있습니다. 접촉의 경우에는 승인제에서 신고제의 형식으로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북교류협력법은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사업에 관한 규정의 체계를 대체로 유지하면서 법 적용의 현실에 맞게 수정하고 세부사항을 보완해왔습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규율을 보강해왔다 하더라도 이것이 곧 규제를 강화해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남․북한 왕래, 북한주민접촉, 교역 및 협력사업 등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남․북한 사이 교류와 협력에 대한 법적․제도적 지원을 강화하는 큰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이는 “(남·북한)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법 목적에 부합할 뿐 아니라, 교류·협력의 실정에 맞춰 법치주의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결국 남북한 주민의 교류·협력 행위에 대하여 규제 일변도로 법을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류·협력이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 중심의 법제를 정비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제도상 미비점이 확인된다면 입법 취지와 함께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여 신중하게 개선·보완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통일부는 이번 개정안 제안이유에서 “최근 남북교류협력 관련 법령 위반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됨에 따라, 법과 원칙에 기반한 남북교류협력 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주민 접촉 등과 관련한 규정을 개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이른바 현 정부의 ‘질서 있는 교류협력 추진’의 기조와 맞물린 움직임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교류·협력 행위에 대한 지원 및 규제는 그 입법 취지와 실제 법 적용 현실을 충분히 감안하여 이뤄져야 하며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기조에 따라 조변석개(朝變夕改)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음 항에서는 남북교류협력법상 접촉신고 제도의 입법 배경과 변천, 법 적용의 문제점을 살펴보겠습니다.
3. 기존 접촉 신고제의 개정 취지와 문제점 1990. 8. 제정 당시 남북교류협력법에서는 남북한 주민 간 접촉에 대하여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등과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접촉하고자 할 때에는 국토통일원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제9조 제3항)며 승인제를 규정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시행령은 접촉 승인을 얻고자 하는 자는 접촉 20일 전까지 신청서 및 신원진술서 등의 서류를 국토통일원장관(현 통일부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하고(시행령 제19조 제2항), 예외적으로 우발적인 접촉 등의 경우에는 접촉 후 7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이렇듯 주민 간 접촉에 대하여도 원칙적으로 승인제로 운영한 것은 남북한 사이 교류·협력을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 혼란스럽고 무분별한 접촉이 이루어질 것을 우려하고 또 그 과정에서 국가 이익에 반하는 행위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과거 남북한 간 오랜 적대관계와 제도 시행 초기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 타당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가 심화, 발전함에 따라 교류·협력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모색하는 앞 단계인 접촉 행위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꾸준히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2005. 5. 법률 개정을 통하여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과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접촉하고자 할 때에는 통일부장관에게 사전에 신고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이 정하는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접촉 후 신고할 수 있다”며 기존의 승인제도를 폐기하고 사전 신고 원칙, 사후 신고 예외의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접촉행위에 대한 규제를 간소화하였습니다(제9조의2 제1항).
그러나 이러한 신고제는 신고 행위 자체로 완결되는 형식이 아니라 수리 여부에 대한 당국의 판단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통일부장관이 접촉 신고를 받을 경우 “남북교류·협력을 저해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에 반하는 경우에 한하여 신고의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제2항), “남북교류·협력의 원활한 추진을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북한주민접촉결과보고서 제출 등 조건을 붙이거나, 3년 이내의 유효기간을 정하여 수리할 수 있다”(제4항)고 규정한 것입니다. 접촉 신고를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한정하였지만 거부 사유 자체가 ‘남북교류·협력 저해,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에 반하는 경우’로 매우 추상적인데다, 시행령에서는 신고 수리의 조건으로 북한주민접촉결과보고서의 제출 외에 ‘접촉 목적, 접촉 대상자 및 접촉 방법 등의 제한 또는 변경’, ‘그 밖에 남북교류·협력의 촉진 및 질서유지를 위하여 통일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을 부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당국의 재량과 개입의 여지를 열어두었습니다.
승인제에서 신고제로의 변경은 접촉의 행위 태양이 다변화하고 규제의 실효성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교류·협력 활성화 및 지원의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이지만, 실제 제도의 내용과 운용에 대하여 꾸준한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일반적인 신고제는 수리를 요하지 않는 일방적이고 자기완결적인 행위, 다시 말해 행정청에 일정한 사항을 통지함으로써 의무가 끝나는 신고를 일컫습니다. 형식적인 요건을 갖췄다면 신고서가 접수기관에 도달한 때에 신고자의 의무가 이행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행정절차법」 제40조 제1항, 제2항). 이에 비하여 남북교류협력법상 사전 접촉신고는 수리를 요하는 신고의 형식으로 규정·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는 「행정기본법」 제34조 소정의 “법령등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행정청에 일정한 사항을 통지하여야 하는 신고로서 법률에 신고의 수리가 필요하다고 명시되어 있는 경우”로서, 행정청이 수리하여야 비로소 그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신고제와 다릅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남북교류협력법 제9조의2 제3항은 “통일부장관은 제1항 본문에 따라 접촉에 관한 신고를 받은 때에는 남북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신고의 수리(受理)를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어 같은 조 제4항은 “제1항 본문에 따른 접촉신고를 받은 통일부장관은 남북교류ㆍ협력의 원활한 추진을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북한주민접촉결과보고서 제출 등 조건을 붙이거나, 3년 이내의 유효기간을 정하여 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률은 비록 수리 거부 사유를 한정적으로 열거하고 있지만 해당 사유 자체가 매우 추상적이고 폭넓을 뿐 아니라, 조건부 수리 등 행정청에 광범위한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질적으로 신고제를 승인제 또는 허가제로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렇듯 사전에 접촉 신고를 하고 이에 대하여 통일부의 거부 사유를 폭넓게 규정하여 사실상 승인제로 운영하는 데는 남북교류협력법상 접촉이 「국가보안법」 소정의 회합·통신으로 ‘변질’될 위험을 있다고 보고, 그러한 위험을 사전에 걸러내는 동시에 당국이 민간 교류·협력의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파악·관리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당국이 좀처럼 접촉과 관련한 규제를 완화하지 못하는 것은 접촉 신고를 민간 교류·협력 활동을 감시·통제의 수단으로, 최소한 대북 정보 확보의 기회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남북교류협력법 제정 이후 3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면서 접촉의 형태가 예상치 못할 정도로 다종다양해지고 빈번하게 이뤄지는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이를 일일이 규율하기는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규제의 필요성도 높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더욱이 “남한과 북한 간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이자 교류·협력의 전초 활동으로서 상호 의사를 교환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낮은 수준의, 그만큼 위험성이 적은 접촉이라는 행위 단계부터 포괄적인 거부 사유를 두고 규제 중심의 승인제로 운영한다면 당국의 입장과 정책에 따라 접촉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원천봉쇄’의 상황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현 정부에서 구체적이고 합당한 이유 없이 대부분의 접촉 신고(또는 신고의 수리)를 거부하여 그러한 우려가 현실화되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대북 협력사업을 계속 추진하면서 정부로부터 각종 승인을 구해야 하는 당사자들로서는 과도한 자기검열에 빠지기 쉽고, 이는 민간 교류·협력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접촉신고를 규제 중심의 승인제로 운영하고 행정청에 과도한 재량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교류·협력을 촉진한다는 법 목적과 규제 간소화(접촉신고 승인제→신고제)의 방향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덧붙여, 접촉이 “남한과 북한 간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남북교류협력법 제3조)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하는 행위로 평가된다면 이에 대하여는 「국가보안법」(제8조) 등의 법률로 규율하면 될 것입니다. 접촉 신고제에 대한 이러한 비판과 함께 광범위하고 불분명한 규제 대상 및 법 적용의 실효성, 그로 인한 수범자의 혼란을 고려한다면 접촉 행위에 대하여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보다는 규제를 완화하여 교류·협력을 촉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질서 있는 교류·협력’이라는 자의적인 기치 아래 접촉을 비롯한 각종 행위를 옥죄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과 법개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4.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의 문제점 통일부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전력자에 대한 접촉신고 수리 거부 근거’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방북 승인, 반출·반입 승인, 협력사업 승인, 수송장비 운행 승인 조건 위반시’에도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조건 위반에 대하여 일정한 제재를 가하는 방향의 법제 정비라고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교류·협력 행위에 대한 당국의 규제를 과도하게 강화하고 교류·협력의 당사자를 당국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먼저, 벌금형이나 과태료 처분을 받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전력자에 대하여 일정 기간 접촉신고 수리를 거부하는 것은 이중처벌금지원칙에 반할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남북교류협력법상 각 행위에 대한 규정 자체가 추상적으로 규정되어 있고 당국이 폭넓은 재량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벌칙과 과태료 처분은 광범위한 교류·협력 행위 전반에 대하여 내려질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통일부는 특정 행위자에 대하여 고의·과실을 불문하고 조건 위반 또는 보고 누락 등의 이유를 들어 제제를 가하고 추가적으로 접촉의 기회마저 박탈할 수 있게 됩니다.
예컨대, 남북교류협력법의 과태료 부과 규정(제28조의2 제1항 각호)에 따르면 ‘사전 또는 사후 접촉신고를 하지 않고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북한의 주민과 접촉하거나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신고를 한 자’는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됩니다(제2호). 또 협력사업 수행자로서 ‘북한 측 상대자와 사업 약정 또는 계약의 체결 등 협력사업의 시행 내용에 대한 보고’를 누락한 자 역시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됩니다(제5호). 나아가 통일부장관은 “남북교류·협력의 원활한 추진을 위하여” 협력사업을 하는 자, 보조금을 받거나 그 밖에 필요한 지원을 받은 자에 대하여 지도·감독을 하고 필요한 경우 사업운영 상황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조사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기피·방해할 경우에도 과태료 처분을 받습니다(제6호). 개정안에 따르면 이들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자들은 과태료를 납부한 뒤에도 6개월까지 접촉신고 수리를 거부당할 수 있습니다.
남북교류협력법이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규율을 하고 있는데다, 통일부장관이 광범위한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당국은 교류·협력행위 전반에 대하여 손쉽게 ‘제재의 장애물(hurdle of restraint)’을 놓을 수 있고 특정 행위자를 표적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교류·협력의 현장은 위축되고 당국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지속가능성과 안정성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며, 민간의 자율성과 다양성은 퇴색하고 말 것입니다. 개정안은 제안이유의 명분과 달리 그러한 악순환을 촉발하는 독소 조항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더욱이 개정안은 과태로 부과 사유를 추가하여 교류·협력의 승인 조건 위반시에도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관련 시행령에 따르면 각 승인 조건에는 교류·협력 행위와 직접 관련된 사항 및 결과보고서 제출 등의 사항도 있지만 그 외에 ‘그 밖에 남북교류·협력의 촉진 및 질서유지를 위하여 통일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교류·협력 당사자는 통일부장관이 자의적이고 포괄적으로 부과한 조건의 위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고 과태료 부과와 이후 접촉 단계에서부터 차단되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서는 개정안의 조항들이 민간 행위자에게 법제의 올가미를 씌우고 옥죄는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큽니다.
만약 이와 같은 개정안이 필요하다면 법령의 규정을 명확화, 구체화하는 동시에 불필요한 행정 규제의 남용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함께 마련하여야 할 것입니다. 개정안을 비롯한 정부의 정책 기조를 통하여 교류·협력 행위를 ‘이적행위’로 위험시하고 관련 행위자를 ‘잠재적 공안사범’으로 적대시하는 관점이 짙게 깔려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규제에 대하여 그 필요성을 역설할 수 있지만, 그러한 필요가 규제 정당화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현행 법제와 운영상 문제점이 있다면 그러한 미비점에 대하여 다양한 행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입법의 취지, 법 개정의 전반적인 흐름을 고려하여 종합적이고 신중한 접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규제 일변도의 독선적 관점이 자칫 남북한 교류·협력의 생태계 자체를 고사(枯死)시키는 누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산하 66개 민간단체는 정부의 법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이 기회에 접촉 신고제를 비롯한 남북교류협력법의 과도한 규제와 행정 재량권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점검한 뒤, ‘상호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고, 이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합리적인 법 개정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2023. 11.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
지난달 통일부는 부처 입법예고로 남북교류협력법 일부개정안을 게시하고, 국민 의견을 받겠다고 공지(10.19)를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북민협은, 본 법률 개정이
* 법 제정 취지인 남북 간 상호교류협력을 촉진한다는 목적이 아닌 규제 및 통제로 취지가 왜곡된다는 지적
* 교류협력단체를 이적단체 활동가를 잠재적 공안사법 관점으로 보는 인식 지적
* 통일부가 민간의 북한주민접촉신고를 전면 수리거부하는 상황에서 관련 법규 개정 취지 의심
* 민간과 협의 없이 통일부 일방적으로 개정하는 것은 통일부의 자의적 판단 및 기준적용 가능성 의심 등과 같은 이유로 통일부에 반대의사를 명확히 피력한 바 있습니다.
관련하여, 북민협은 변호사의 자문을 얻어 공개 입법의견을 제출하였습니다. 그리고 향후 국회 외통위와의 협조를 구하면서도, 여타 통일운동 및 평화운동 단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민간단체의 목소리를 높여나가고자 합니다.
통일부가 입법을 예고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일부개정법률안(통일부 공고 제2023-148호, 2023.10.19.)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위 법률 개정(안)에 대해 인도적 대북협력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인도주의 상황개선과 한반도 화해와 평화통일에 기여하고자 했던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산하 66개 민간단체는 정부의 법 개정 의도와 방향에 동의하지 않음.
○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제정 목적인 ‘군사분계선 이남지역과 그 이북지역 간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 에 맞지 않게 규제와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 민간단체의 상호 교류와 협력 활동이 제한될 것이 자명함.
○ 통일부가 개정 이유로 ‘최근 남북교류협력 관련 법령 위반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됨’을 전제한 것은 지난 30여 년 간 시민사회 및 종교단체들이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헌신과 노력을 폄하한 것임. 통일부는 개정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함. 또한 혹시 있을 수 있는 일부 단체의 실수나 과오를 일반화하여 성실하고 투명하게 활동해 온 대부분의 단체들에 불법 프레임을 씌우는 누를 범하지 않기를 바람.
○ 법 개정(안)은 과잉금지원칙과 이중처벌금지원칙 등이 준용되지 않았고, 수리를 요구하는 신고제도가 사실상 승인제도와 동일하게 운영되는 현행 법의 문제점을 수정·보완하기보다는 더욱 고착화될 것으로 판단됨.
○ 북민협은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민간 분야 중심으로 남북 간 교류협력을 촉진해야 하고, 이를 법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향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개정 방향은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에서 분권화 및 자율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하며, 자기완결적 접촉신고제 등 포지티브 시스템(Positive System, 열거주의)에서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 포괄주의)로 전환해야 함.
아래에 북민협의 입장 전문을 게재합니다.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통일부 공고 제2023-148호)에 대한 의견
1. 의견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산하 66개 민간단체는 2023. 10. 19. 통일부가 제2023-148호로 입법예고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밝히며,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전합니다.
2.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의 입법취지와 법 개정의 방향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다음부터 ‘남북교류협력법’이라 합니다)은 남북한 사이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1990. 8. 1. 제정, 시행되었습니다. 남북교류협력법 제정 당시 제1조는 “(남·북한 간) 상호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하면서, 그 이전에는 상호 적대(敵對)와 반목(反目)의 대상으로서 철저히 단절되어 있던 남북관계를 대화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하고 남북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이 법을 적용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제3조).
남북교류협력법은 이후 30여 년 동안 남북한 주민 사이의 교류·협력을 뒷받침하는 기본법으로 자리매김하였고, 그 사이 남북한의 관계는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의 심화와 다변화에 따라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그 바탕에는 남북한이 정치·군사적 대결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각적인 교류·협력의 관계를 만들어갈 때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이룩하고 지속가능한 평화, 나아가 통일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자리매김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합의는 남북교류협력법 제정 이후 대한민국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실제 교류·협력에 참여하거나 그 결과로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더욱 공고화되었습니다. 남북교류협력법이 2005. 5. 31. 개정을 통하여 “(남·북한 간) 상호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고 명시한 것도 그러한 사회적 합의와 뚜렷한 지향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또한 남북관계가 심화,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교류협력의 분야와 형태를 남북교류협력법으로 포괄하여 왔습니다. 그 예로 ‘교역’의 대상을 물품만으로 규정하던 것을 용역 및 전자적 형태의 무체물까지 포함하게 되었습니다(제2조 제2호). 나아가 남북한 주민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협력사업’의 대표적인 분야를 “문화·체육·학술·경제 등에 관한 제반활동”으로 한정하였지만, 현행법은 “환경, 과학기술, 정보통신, 문화, 체육, 관광, 보건의료, 방역, 교통, 농림축산, 해양수산 등에 관한 모든 활동”으로 확대하여 규정하고 있습니다(제2조 제4호). 또 ‘방문’의 경우에는 정부에서 단순히 증명서만 발급하던 것을 “한 차례만 사용할 수 있는 방문증명서”와 함께 “유효기간이 끝날 때까지 여러 차례 사용할 수 있는 방문증명서”(복수방문증명서)까지 발급하고 있습니다. 접촉의 경우에는 승인제에서 신고제의 형식으로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북교류협력법은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사업에 관한 규정의 체계를 대체로 유지하면서 법 적용의 현실에 맞게 수정하고 세부사항을 보완해왔습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규율을 보강해왔다 하더라도 이것이 곧 규제를 강화해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남․북한 왕래, 북한주민접촉, 교역 및 협력사업 등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남․북한 사이 교류와 협력에 대한 법적․제도적 지원을 강화하는 큰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이는 “(남·북한)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법 목적에 부합할 뿐 아니라, 교류·협력의 실정에 맞춰 법치주의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결국 남북한 주민의 교류·협력 행위에 대하여 규제 일변도로 법을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류·협력이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 중심의 법제를 정비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제도상 미비점이 확인된다면 입법 취지와 함께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여 신중하게 개선·보완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통일부는 이번 개정안 제안이유에서 “최근 남북교류협력 관련 법령 위반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됨에 따라, 법과 원칙에 기반한 남북교류협력 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주민 접촉 등과 관련한 규정을 개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이른바 현 정부의 ‘질서 있는 교류협력 추진’의 기조와 맞물린 움직임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교류·협력 행위에 대한 지원 및 규제는 그 입법 취지와 실제 법 적용 현실을 충분히 감안하여 이뤄져야 하며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기조에 따라 조변석개(朝變夕改)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음 항에서는 남북교류협력법상 접촉신고 제도의 입법 배경과 변천, 법 적용의 문제점을 살펴보겠습니다.
3. 기존 접촉 신고제의 개정 취지와 문제점
1990. 8. 제정 당시 남북교류협력법에서는 남북한 주민 간 접촉에 대하여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등과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접촉하고자 할 때에는 국토통일원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제9조 제3항)며 승인제를 규정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시행령은 접촉 승인을 얻고자 하는 자는 접촉 20일 전까지 신청서 및 신원진술서 등의 서류를 국토통일원장관(현 통일부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하고(시행령 제19조 제2항), 예외적으로 우발적인 접촉 등의 경우에는 접촉 후 7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이렇듯 주민 간 접촉에 대하여도 원칙적으로 승인제로 운영한 것은 남북한 사이 교류·협력을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 혼란스럽고 무분별한 접촉이 이루어질 것을 우려하고 또 그 과정에서 국가 이익에 반하는 행위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과거 남북한 간 오랜 적대관계와 제도 시행 초기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 타당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가 심화, 발전함에 따라 교류·협력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모색하는 앞 단계인 접촉 행위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꾸준히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2005. 5. 법률 개정을 통하여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과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접촉하고자 할 때에는 통일부장관에게 사전에 신고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이 정하는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접촉 후 신고할 수 있다”며 기존의 승인제도를 폐기하고 사전 신고 원칙, 사후 신고 예외의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접촉행위에 대한 규제를 간소화하였습니다(제9조의2 제1항).
그러나 이러한 신고제는 신고 행위 자체로 완결되는 형식이 아니라 수리 여부에 대한 당국의 판단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통일부장관이 접촉 신고를 받을 경우 “남북교류·협력을 저해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에 반하는 경우에 한하여 신고의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제2항), “남북교류·협력의 원활한 추진을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북한주민접촉결과보고서 제출 등 조건을 붙이거나, 3년 이내의 유효기간을 정하여 수리할 수 있다”(제4항)고 규정한 것입니다. 접촉 신고를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한정하였지만 거부 사유 자체가 ‘남북교류·협력 저해,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에 반하는 경우’로 매우 추상적인데다, 시행령에서는 신고 수리의 조건으로 북한주민접촉결과보고서의 제출 외에 ‘접촉 목적, 접촉 대상자 및 접촉 방법 등의 제한 또는 변경’, ‘그 밖에 남북교류·협력의 촉진 및 질서유지를 위하여 통일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을 부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당국의 재량과 개입의 여지를 열어두었습니다.
승인제에서 신고제로의 변경은 접촉의 행위 태양이 다변화하고 규제의 실효성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교류·협력 활성화 및 지원의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이지만, 실제 제도의 내용과 운용에 대하여 꾸준한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일반적인 신고제는 수리를 요하지 않는 일방적이고 자기완결적인 행위, 다시 말해 행정청에 일정한 사항을 통지함으로써 의무가 끝나는 신고를 일컫습니다. 형식적인 요건을 갖췄다면 신고서가 접수기관에 도달한 때에 신고자의 의무가 이행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행정절차법」 제40조 제1항, 제2항). 이에 비하여 남북교류협력법상 사전 접촉신고는 수리를 요하는 신고의 형식으로 규정·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는 「행정기본법」 제34조 소정의 “법령등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행정청에 일정한 사항을 통지하여야 하는 신고로서 법률에 신고의 수리가 필요하다고 명시되어 있는 경우”로서, 행정청이 수리하여야 비로소 그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신고제와 다릅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남북교류협력법 제9조의2 제3항은 “통일부장관은 제1항 본문에 따라 접촉에 관한 신고를 받은 때에는 남북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신고의 수리(受理)를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어 같은 조 제4항은 “제1항 본문에 따른 접촉신고를 받은 통일부장관은 남북교류ㆍ협력의 원활한 추진을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북한주민접촉결과보고서 제출 등 조건을 붙이거나, 3년 이내의 유효기간을 정하여 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률은 비록 수리 거부 사유를 한정적으로 열거하고 있지만 해당 사유 자체가 매우 추상적이고 폭넓을 뿐 아니라, 조건부 수리 등 행정청에 광범위한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질적으로 신고제를 승인제 또는 허가제로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렇듯 사전에 접촉 신고를 하고 이에 대하여 통일부의 거부 사유를 폭넓게 규정하여 사실상 승인제로 운영하는 데는 남북교류협력법상 접촉이 「국가보안법」 소정의 회합·통신으로 ‘변질’될 위험을 있다고 보고, 그러한 위험을 사전에 걸러내는 동시에 당국이 민간 교류·협력의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파악·관리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당국이 좀처럼 접촉과 관련한 규제를 완화하지 못하는 것은 접촉 신고를 민간 교류·협력 활동을 감시·통제의 수단으로, 최소한 대북 정보 확보의 기회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남북교류협력법 제정 이후 3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면서 접촉의 형태가 예상치 못할 정도로 다종다양해지고 빈번하게 이뤄지는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이를 일일이 규율하기는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규제의 필요성도 높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더욱이 “남한과 북한 간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이자 교류·협력의 전초 활동으로서 상호 의사를 교환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낮은 수준의, 그만큼 위험성이 적은 접촉이라는 행위 단계부터 포괄적인 거부 사유를 두고 규제 중심의 승인제로 운영한다면 당국의 입장과 정책에 따라 접촉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원천봉쇄’의 상황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현 정부에서 구체적이고 합당한 이유 없이 대부분의 접촉 신고(또는 신고의 수리)를 거부하여 그러한 우려가 현실화되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대북 협력사업을 계속 추진하면서 정부로부터 각종 승인을 구해야 하는 당사자들로서는 과도한 자기검열에 빠지기 쉽고, 이는 민간 교류·협력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접촉신고를 규제 중심의 승인제로 운영하고 행정청에 과도한 재량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교류·협력을 촉진한다는 법 목적과 규제 간소화(접촉신고 승인제→신고제)의 방향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덧붙여, 접촉이 “남한과 북한 간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남북교류협력법 제3조)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하는 행위로 평가된다면 이에 대하여는 「국가보안법」(제8조) 등의 법률로 규율하면 될 것입니다.
접촉 신고제에 대한 이러한 비판과 함께 광범위하고 불분명한 규제 대상 및 법 적용의 실효성, 그로 인한 수범자의 혼란을 고려한다면 접촉 행위에 대하여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보다는 규제를 완화하여 교류·협력을 촉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질서 있는 교류·협력’이라는 자의적인 기치 아래 접촉을 비롯한 각종 행위를 옥죄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과 법개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4.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의 문제점
통일부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전력자에 대한 접촉신고 수리 거부 근거’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방북 승인, 반출·반입 승인, 협력사업 승인, 수송장비 운행 승인 조건 위반시’에도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조건 위반에 대하여 일정한 제재를 가하는 방향의 법제 정비라고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교류·협력 행위에 대한 당국의 규제를 과도하게 강화하고 교류·협력의 당사자를 당국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먼저, 벌금형이나 과태료 처분을 받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전력자에 대하여 일정 기간 접촉신고 수리를 거부하는 것은 이중처벌금지원칙에 반할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남북교류협력법상 각 행위에 대한 규정 자체가 추상적으로 규정되어 있고 당국이 폭넓은 재량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벌칙과 과태료 처분은 광범위한 교류·협력 행위 전반에 대하여 내려질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통일부는 특정 행위자에 대하여 고의·과실을 불문하고 조건 위반 또는 보고 누락 등의 이유를 들어 제제를 가하고 추가적으로 접촉의 기회마저 박탈할 수 있게 됩니다.
예컨대, 남북교류협력법의 과태료 부과 규정(제28조의2 제1항 각호)에 따르면 ‘사전 또는 사후 접촉신고를 하지 않고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북한의 주민과 접촉하거나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신고를 한 자’는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됩니다(제2호). 또 협력사업 수행자로서 ‘북한 측 상대자와 사업 약정 또는 계약의 체결 등 협력사업의 시행 내용에 대한 보고’를 누락한 자 역시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됩니다(제5호). 나아가 통일부장관은 “남북교류·협력의 원활한 추진을 위하여” 협력사업을 하는 자, 보조금을 받거나 그 밖에 필요한 지원을 받은 자에 대하여 지도·감독을 하고 필요한 경우 사업운영 상황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조사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기피·방해할 경우에도 과태료 처분을 받습니다(제6호). 개정안에 따르면 이들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자들은 과태료를 납부한 뒤에도 6개월까지 접촉신고 수리를 거부당할 수 있습니다.
남북교류협력법이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규율을 하고 있는데다, 통일부장관이 광범위한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당국은 교류·협력행위 전반에 대하여 손쉽게 ‘제재의 장애물(hurdle of restraint)’을 놓을 수 있고 특정 행위자를 표적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교류·협력의 현장은 위축되고 당국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지속가능성과 안정성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며, 민간의 자율성과 다양성은 퇴색하고 말 것입니다. 개정안은 제안이유의 명분과 달리 그러한 악순환을 촉발하는 독소 조항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더욱이 개정안은 과태로 부과 사유를 추가하여 교류·협력의 승인 조건 위반시에도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관련 시행령에 따르면 각 승인 조건에는 교류·협력 행위와 직접 관련된 사항 및 결과보고서 제출 등의 사항도 있지만 그 외에 ‘그 밖에 남북교류·협력의 촉진 및 질서유지를 위하여 통일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교류·협력 당사자는 통일부장관이 자의적이고 포괄적으로 부과한 조건의 위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고 과태료 부과와 이후 접촉 단계에서부터 차단되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서는 개정안의 조항들이 민간 행위자에게 법제의 올가미를 씌우고 옥죄는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큽니다.
만약 이와 같은 개정안이 필요하다면 법령의 규정을 명확화, 구체화하는 동시에 불필요한 행정 규제의 남용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함께 마련하여야 할 것입니다. 개정안을 비롯한 정부의 정책 기조를 통하여 교류·협력 행위를 ‘이적행위’로 위험시하고 관련 행위자를 ‘잠재적 공안사범’으로 적대시하는 관점이 짙게 깔려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규제에 대하여 그 필요성을 역설할 수 있지만, 그러한 필요가 규제 정당화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현행 법제와 운영상 문제점이 있다면 그러한 미비점에 대하여 다양한 행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입법의 취지, 법 개정의 전반적인 흐름을 고려하여 종합적이고 신중한 접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규제 일변도의 독선적 관점이 자칫 남북한 교류·협력의 생태계 자체를 고사(枯死)시키는 누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산하 66개 민간단체는 정부의 법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이 기회에 접촉 신고제를 비롯한 남북교류협력법의 과도한 규제와 행정 재량권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점검한 뒤, ‘상호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고, 이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합리적인 법 개정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2023. 11.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