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버거운 청년들, 통일이 이익 된다고 봐야 동의하겠죠”
정전협정 한미동맹 70년
⑩ 2030에게 통일을 묻다
기자신형철,장예지
- 수정 2023-07-24 09:00
- 등록 2023-07-24 09:00
11일 서울 마포구 정치발전소에서 열린 정전 70주년 기획 2030 간담회. 별샛별 (외교안보전분 뉴스레터 델타월딩 디렉터), 김민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전예린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한반도정책컨센서스 대표) 김주헌(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전이슬(대북지원단체 하나누리 간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공익이든 사익이든 통일이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합리적인 판단이 들 때 청년 세대가 통일에 동의할 것 같아요.”지난 11일 <한겨레>가 진행한 통일과 남북 관계에 관한 청년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통일을 무조건적인 목표로 여기지는 않았다. 이들은, 통일은 내 삶이나 주변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짚고 따져볼 변수로 생각했다. 이런 변화는 낯설지 않다. 이미 한국 사회는 지난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 대표팀을 꾸릴 때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의 인식 차를 절감했다.좌담 참석자들은 정치권이 진영에 따라 편의적으로 남북문제를 도식화하는 태도에 비판적이었다.한 참석자는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북한 주적 논쟁을 두고 “그 자체가 격이 떨어진다”고 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이 “국내 정치를 염두에 둔 무책임한 정책”이라며 “정치권이 청년들을 한반도 문제에서 배제시키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특히, 이들은 “통일에 반대하면 적폐가 되고, 찬성하면 종북이 되는” 양극화한 한국 사회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들은 보수 세력이 북한 인권을 부각하고, 진보 세력이 대북 지원을 강조하는 상황에 관해서도 혼란스러워했다.그러면서도 청년들은 분단 국가, 휴전 국가에 사는 일상을 체감하고 있었다. 한 참석자는 지난 5월 북한 우주발사체 경계경보 오발령 사태라는 혼란을 겪으며 “분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자신들의 뜻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좀 더 반영되길 바랐다. 청년들은 접경지역에서의 전염병 방역 문제나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 대처 문제 등 남북이 같이 풀어야 할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는 훈련이 통일과 남북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한겨레>는 통일과 남북 관계에 관심 있는 청년들의 좌담으로 지난 5월15일부터 시작한 ‘정전·한미동맹 70주년’ 창간기획을 마무리했다.⑩ 2030에게 통일을 묻다
좌담에는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청년 비영리단체인 한반도정책컨센서스 활동가 전예린(21)·김민재(22)씨와 남북협력단체 하나누리 간사인 전이슬(32)씨, 외교·안보 뉴스레터 ‘델타월딩’을 운영하는 별샛별(43)씨, 통일학을 공부하는 김주헌(31)씨가 참석했다.
간담회는 “청년들은 통일에 무관심한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했다. 참석자들은 이 물음을 우문이라고 했다. 통일을 ‘당위’로 받아들이는 윗세대들과 달리 이들은 ‘왜’를 먼저 짚어야 한다는 의견들을 내놨다.
김민재 ‘청년들도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라고 묻는 질문부터 잘못됐다. 제 또래 대학생들은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공익이든 사익이든, 통일이 합리적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판단이 들 때 청년 세대가 통일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전예린 통일을 왜 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는데, 공감한다. 남북 관계가 안 좋아지고 긴장이 높아지면서 북한에 대한 청년 세대의 적대감이 막연히 쌓인 것 같다.
별샛별 젊은 세대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판단할 수 있다. 어쩌면 윗세대보다 더 전문가다. 그런데 윗세대는 이들에게 ‘왜 통일에 관심 없느냐'고 묻는다. 통일 문제는 청년 세대의 지향점을 파악한 뒤 유연하고 촘촘하게 전략을 짜야 한다.
전이슬 청년들이 통일에 관해 체감할 수 있는 주제부터 다뤄야 한다. 학교에서 통일 교육을 할 때도,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에 대한 남북 공동 단속이나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에 대한 남북 공동 대응 등을 이야기하면 훨씬 쉽게 이해한다. 학생들이 “기본적인 것은 당연히 같이해야죠”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우리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던지면 학생들은 바로 반응한다.
김민재 청년의 삶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당장 1년 뒤에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데 통일 문제를 논하는 게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북한 인권이든, 대북 협력이든 건강하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김주헌 통일 분야에서 오래 일했다. 통일 운동을 하는 것이 마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들은 지금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인데 거기에다 “너네, 왜 통일에 관심 없냐”고 물으면 너무 공격적이다.
별샛별 사람들은 ‘젊은 친구들은 북한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데 그건 아니다. 어린 친구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서 오히려 더 빠르게 한반도 소식을 접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은 꽤 전문성도 있다.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기에는 삶의 무게가 버겁다고 한 청년들은 정치권이 여야로 나뉘어, 여당은 북한 인권 문제를 부각하고, 야당은 대북 지원 문제를 강조하는 이분법적 접근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선거마다 ‘북한이 주적인지’를 놓고 다투는 것에 대해서는 “격이 떨어진다”고도 했다.
별샛별 왜 2030세대들이 윗세대들의 통일담론을 불신하게 됐는지 추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중 하나가 북한 인권이라는 이슈인 것 같다. 북한 인권은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전이슬 인도적 지원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 보수 세력들이 쓰는 카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진보로 여겨지는 정권이 추진한다. 반면, 인권은 진보 세력의 의제인데 한국에서는 보수가 북한 인권을 강조한다. 두 어젠다를 두고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한다.
김민재 실제로 북한 인권이 낙후된 건 맞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북한 인권을 정치적 수사로 이야기를 하니 신뢰가 가지 않는다. 청년들은 정치권에서 말하는 북한 인권을 그저 이념적 주장 차원에서 받아들일 뿐이다. 그래서 북한 인권이 현시점에서는 편견 없이 건강하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전예린 대북 지원과 북한 인권 문제를 두고 정치권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청년들은 지쳐간다. 통일은 정치인들이 논하고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해 버린다. 양극화된 정치권의 담론 생태계가 청년들을 한반도 문제에서 배제하는 것 같다.
김민재 대선 후보들이 토론 때 서로 “북한을 주적으로 생각하느냐”를 두고 묻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대선 주자들이 그런 수준의 질문을 던져야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를 외치는 것 자체가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별샛별 북한 인권과 대북 지원 문제가 국내에서 정쟁으로 쓰여 버리니 장기적으로 국익에 해가 된다.
참석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국내 정치를 더 의식한 정책 같다면서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는 개념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김민재 청년들이 보수적인 통일 담론에 호응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이는 온라인에 과대표되는 여론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주변에서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무책임하다는 의견이 많다.
전이슬 담대한 구상은 국내 정치를 겨냥하고 있다. 대북 지원과 북한 인권을 이런 식으로 소모하고 있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작은 위험 요소까지 생각하고 가야 하는데, 뭐가 담대한 구상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김민재 북한 문제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 같다. 지금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보수 진영은 북한 관련 이슈를 안 좋은 쪽으로 홍보하면서 이익을 얻으려는 것 같다.
전예린 제 주변 청년들은 관심 자체가 없는 것 같다. 탄도미사일이 날아다니고, 정부가 대북제재를 하고 이런 것은 알지만, 보수나 진보의 입장이 뭔지 기초적인 것도 모르고 있다.
김주헌 그렇다. 정작 북한과 연계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31일 우주발사체 오발령 논란이 대표적이다. 그때는 정말 큰일 난 줄 알았다. 아내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며 날 깨우더라.
별샛별 당시 서울시에만 문자가 와서 경기도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출근했다.
김주헌 오히려 위성발사체와 더 연관이 있는 인천 또한 경보문자가 안 왔다더라. 서울시민에게만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이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분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토론은 자연스레 정부가 강조하는 한-미 동맹 강화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참석자들은 맹목적인 한-미 동맹 강화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전이슬 한-미 동맹의 이익도 물론 있다. 하지만 한-미 동맹의 이익은 과장됐고, 폐해는 축소됐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바뀌었으니 한-미 동맹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민재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 한-미 동맹에 기대는 것은 비합리적인 처사라고 생각한다.
전예린 한반도 문제 해결의 직접 당사자는 결국 남북이다. 그리고 북한에 있어 협상은 국가의 생존이 달린 일인데,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만 과시한다면 협상에 나오겠는가.
좌담회 막바지, 참석자 사이에서는 “그럼 해법은 무엇이냐”는 말이 나왔다. 전예린씨는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문제를 두고 청년 세대가 뜨거운 관심과 논쟁을 벌인 사례를 언급했다.
전예린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명백한 당사자다. 그럼에도 충분한 이야기를 못 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문제를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지만, 구성해 놓고 보니 여론이 달라지지 않았나. 이를 보면 젊은층이 북한을 다양한 경로로 접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주헌 요즘은 통일에 반대하면 적폐가 되고, 통일에 찬성하면 종북이 된다. 양쪽 반목이 심하다 보니 통일 관련 일을 하는 쪽의 사정도 안 좋다. 청년 활동가들이 들어오지 않는다. 통일운동이 동맥경화에 걸린 것이다.
김민재 민주주의는 국민을 계도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이 통일에 보수적이고 관심이 없다고 탓할 게 아니라 청년이 통일을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발언권을 줘야 한다. 청년 세대 통일담론에 정작 청년은 없는 느낌이다.
전이슬 통일과 평화, 남북 관계와 외교는 목적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해결해나가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시각으로 남북 관계와 북한 문제를 바라본다면 ‘레드 콤플렉스’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두려워하지 말고 통일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소란스러운 게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았나.<끝>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기사원문: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01401.html?fbclid=IwAR1-g5w-wIDmuVe04Wo1fdAeBWK2Atml4AOdLdwul1FscbDBUNw7qpCUeyA
“오늘이 버거운 청년들, 통일이 이익 된다고 봐야 동의하겠죠”
정전협정 한미동맹 70년
⑩ 2030에게 통일을 묻다
11일 서울 마포구 정치발전소에서 열린 정전 70주년 기획 2030 간담회. 별샛별 (외교안보전분 뉴스레터 델타월딩 디렉터), 김민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전예린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한반도정책컨센서스 대표) 김주헌(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전이슬(대북지원단체 하나누리 간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공익이든 사익이든 통일이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합리적인 판단이 들 때 청년 세대가 통일에 동의할 것 같아요.”지난 11일 <한겨레>가 진행한 통일과 남북 관계에 관한 청년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통일을 무조건적인 목표로 여기지는 않았다. 이들은, 통일은 내 삶이나 주변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짚고 따져볼 변수로 생각했다. 이런 변화는 낯설지 않다. 이미 한국 사회는 지난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 대표팀을 꾸릴 때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의 인식 차를 절감했다.좌담 참석자들은 정치권이 진영에 따라 편의적으로 남북문제를 도식화하는 태도에 비판적이었다.한 참석자는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북한 주적 논쟁을 두고 “그 자체가 격이 떨어진다”고 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이 “국내 정치를 염두에 둔 무책임한 정책”이라며 “정치권이 청년들을 한반도 문제에서 배제시키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특히, 이들은 “통일에 반대하면 적폐가 되고, 찬성하면 종북이 되는” 양극화한 한국 사회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들은 보수 세력이 북한 인권을 부각하고, 진보 세력이 대북 지원을 강조하는 상황에 관해서도 혼란스러워했다.그러면서도 청년들은 분단 국가, 휴전 국가에 사는 일상을 체감하고 있었다. 한 참석자는 지난 5월 북한 우주발사체 경계경보 오발령 사태라는 혼란을 겪으며 “분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자신들의 뜻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좀 더 반영되길 바랐다. 청년들은 접경지역에서의 전염병 방역 문제나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 대처 문제 등 남북이 같이 풀어야 할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는 훈련이 통일과 남북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한겨레>는 통일과 남북 관계에 관심 있는 청년들의 좌담으로 지난 5월15일부터 시작한 ‘정전·한미동맹 70주년’ 창간기획을 마무리했다.⑩ 2030에게 통일을 묻다
좌담에는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청년 비영리단체인 한반도정책컨센서스 활동가 전예린(21)·김민재(22)씨와 남북협력단체 하나누리 간사인 전이슬(32)씨, 외교·안보 뉴스레터 ‘델타월딩’을 운영하는 별샛별(43)씨, 통일학을 공부하는 김주헌(31)씨가 참석했다.
간담회는 “청년들은 통일에 무관심한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했다. 참석자들은 이 물음을 우문이라고 했다. 통일을 ‘당위’로 받아들이는 윗세대들과 달리 이들은 ‘왜’를 먼저 짚어야 한다는 의견들을 내놨다.
김민재 ‘청년들도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라고 묻는 질문부터 잘못됐다. 제 또래 대학생들은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공익이든 사익이든, 통일이 합리적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판단이 들 때 청년 세대가 통일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전예린 통일을 왜 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는데, 공감한다. 남북 관계가 안 좋아지고 긴장이 높아지면서 북한에 대한 청년 세대의 적대감이 막연히 쌓인 것 같다.
별샛별 젊은 세대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판단할 수 있다. 어쩌면 윗세대보다 더 전문가다. 그런데 윗세대는 이들에게 ‘왜 통일에 관심 없느냐'고 묻는다. 통일 문제는 청년 세대의 지향점을 파악한 뒤 유연하고 촘촘하게 전략을 짜야 한다.
전이슬 청년들이 통일에 관해 체감할 수 있는 주제부터 다뤄야 한다. 학교에서 통일 교육을 할 때도,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에 대한 남북 공동 단속이나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에 대한 남북 공동 대응 등을 이야기하면 훨씬 쉽게 이해한다. 학생들이 “기본적인 것은 당연히 같이해야죠”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우리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던지면 학생들은 바로 반응한다.
김민재 청년의 삶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당장 1년 뒤에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데 통일 문제를 논하는 게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북한 인권이든, 대북 협력이든 건강하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김주헌 통일 분야에서 오래 일했다. 통일 운동을 하는 것이 마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들은 지금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인데 거기에다 “너네, 왜 통일에 관심 없냐”고 물으면 너무 공격적이다.
별샛별 사람들은 ‘젊은 친구들은 북한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데 그건 아니다. 어린 친구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서 오히려 더 빠르게 한반도 소식을 접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은 꽤 전문성도 있다.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기에는 삶의 무게가 버겁다고 한 청년들은 정치권이 여야로 나뉘어, 여당은 북한 인권 문제를 부각하고, 야당은 대북 지원 문제를 강조하는 이분법적 접근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선거마다 ‘북한이 주적인지’를 놓고 다투는 것에 대해서는 “격이 떨어진다”고도 했다.
별샛별 왜 2030세대들이 윗세대들의 통일담론을 불신하게 됐는지 추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중 하나가 북한 인권이라는 이슈인 것 같다. 북한 인권은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전이슬 인도적 지원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 보수 세력들이 쓰는 카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진보로 여겨지는 정권이 추진한다. 반면, 인권은 진보 세력의 의제인데 한국에서는 보수가 북한 인권을 강조한다. 두 어젠다를 두고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한다.
김민재 실제로 북한 인권이 낙후된 건 맞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북한 인권을 정치적 수사로 이야기를 하니 신뢰가 가지 않는다. 청년들은 정치권에서 말하는 북한 인권을 그저 이념적 주장 차원에서 받아들일 뿐이다. 그래서 북한 인권이 현시점에서는 편견 없이 건강하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전예린 대북 지원과 북한 인권 문제를 두고 정치권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청년들은 지쳐간다. 통일은 정치인들이 논하고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해 버린다. 양극화된 정치권의 담론 생태계가 청년들을 한반도 문제에서 배제하는 것 같다.
김민재 대선 후보들이 토론 때 서로 “북한을 주적으로 생각하느냐”를 두고 묻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대선 주자들이 그런 수준의 질문을 던져야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를 외치는 것 자체가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별샛별 북한 인권과 대북 지원 문제가 국내에서 정쟁으로 쓰여 버리니 장기적으로 국익에 해가 된다.
참석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국내 정치를 더 의식한 정책 같다면서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는 개념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김민재 청년들이 보수적인 통일 담론에 호응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이는 온라인에 과대표되는 여론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주변에서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무책임하다는 의견이 많다.
전이슬 담대한 구상은 국내 정치를 겨냥하고 있다. 대북 지원과 북한 인권을 이런 식으로 소모하고 있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작은 위험 요소까지 생각하고 가야 하는데, 뭐가 담대한 구상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김민재 북한 문제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 같다. 지금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보수 진영은 북한 관련 이슈를 안 좋은 쪽으로 홍보하면서 이익을 얻으려는 것 같다.
전예린 제 주변 청년들은 관심 자체가 없는 것 같다. 탄도미사일이 날아다니고, 정부가 대북제재를 하고 이런 것은 알지만, 보수나 진보의 입장이 뭔지 기초적인 것도 모르고 있다.
김주헌 그렇다. 정작 북한과 연계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31일 우주발사체 오발령 논란이 대표적이다. 그때는 정말 큰일 난 줄 알았다. 아내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며 날 깨우더라.
별샛별 당시 서울시에만 문자가 와서 경기도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출근했다.
김주헌 오히려 위성발사체와 더 연관이 있는 인천 또한 경보문자가 안 왔다더라. 서울시민에게만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이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분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토론은 자연스레 정부가 강조하는 한-미 동맹 강화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참석자들은 맹목적인 한-미 동맹 강화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전이슬 한-미 동맹의 이익도 물론 있다. 하지만 한-미 동맹의 이익은 과장됐고, 폐해는 축소됐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바뀌었으니 한-미 동맹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민재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 한-미 동맹에 기대는 것은 비합리적인 처사라고 생각한다.
전예린 한반도 문제 해결의 직접 당사자는 결국 남북이다. 그리고 북한에 있어 협상은 국가의 생존이 달린 일인데,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만 과시한다면 협상에 나오겠는가.
좌담회 막바지, 참석자 사이에서는 “그럼 해법은 무엇이냐”는 말이 나왔다. 전예린씨는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문제를 두고 청년 세대가 뜨거운 관심과 논쟁을 벌인 사례를 언급했다.
전예린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명백한 당사자다. 그럼에도 충분한 이야기를 못 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문제를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지만, 구성해 놓고 보니 여론이 달라지지 않았나. 이를 보면 젊은층이 북한을 다양한 경로로 접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주헌 요즘은 통일에 반대하면 적폐가 되고, 통일에 찬성하면 종북이 된다. 양쪽 반목이 심하다 보니 통일 관련 일을 하는 쪽의 사정도 안 좋다. 청년 활동가들이 들어오지 않는다. 통일운동이 동맥경화에 걸린 것이다.
김민재 민주주의는 국민을 계도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이 통일에 보수적이고 관심이 없다고 탓할 게 아니라 청년이 통일을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발언권을 줘야 한다. 청년 세대 통일담론에 정작 청년은 없는 느낌이다.
전이슬 통일과 평화, 남북 관계와 외교는 목적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해결해나가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시각으로 남북 관계와 북한 문제를 바라본다면 ‘레드 콤플렉스’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두려워하지 말고 통일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소란스러운 게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았나.<끝>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기사원문: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01401.html?fbclid=IwAR1-g5w-wIDmuVe04Wo1fdAeBWK2Atml4AOdLdwul1FscbDBUNw7qpCUeyA